가.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

한의학에서 통증을 설명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명제가 있습니다.

通則不痛 不通則痛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黃帝內經 素問 擧痛論에서 한기가 경맥에 들어와 기혈의 흐름이 막히면 통증이 생긴다고 서술한 대목이 이 명제의 근거로 인용됩니다.

너무 자주 쓰이다 보니 오히려 검증되지 않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무슨 통증이든 이 말로 설명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명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목적은 이 문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거리를 재는 것입니다.

나. 이 명제가 정확한 자리

혈류가 막혀 생기는 통증에서 이 명제는 문자 그대로 옳습니다.

조직에 산소 공급이 끊기면 무산소 대사가 진행되고 젖산과 수소이온, 아데노신, 브래디키닌 같은 물질이 쌓입니다. 이 물질들이 침해수용기를 직접 자극합니다. 통증은 대사산물이 씻겨 나가지 못한 결과입니다.

협심증이 대표적입니다. 관상동맥이 좁아진 상태에서 심근의 산소 요구가 늘면 가슴이 조입니다. 쉬면 가라앉습니다. 흐름이 회복되면 통증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통즉불통이 그대로 성립합니다.

다리 동맥이 좁아진 경우도 같습니다. 걸으면 종아리가 아프고 서서 쉬면 몇 분 안에 풀립니다.

근육의 지속적인 수축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수축이 이어지면 근육 안의 압력이 모세혈관 관류압을 넘어서면서 혈류가 줄고, 대사산물이 축적되며 통증이 생깁니다. 어깨와 목의 긴장성 통증에서 관찰되는 구조입니다.

여기까지는 고전의 서술과 현대 생리학이 같은 사건을 가리킵니다.

다. 명제가 확장되는 자리

염증에도 이 말이 부분적으로 적용됩니다.

염증에서는 오히려 혈류가 늘어납니다. 붉어지고 뜨거워지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아픕니다. 흐름이 막혀서가 아니라 조직에 고인 삼출액이 압력을 만들고, 염증 매개물질이 침해수용기의 역치를 낮추기 때문입니다.

고전에서 통증을 논할 때 한증과 열증을 나누어 접근한 것은 이 차이를 임상적으로 구분해 온 흔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따뜻하게 하면 편해지는 통증과 오히려 차게 해야 하는 통증을 다르게 다루었습니다.

다만 이 확장에서 통한다는 말의 의미는 이미 달라져 있습니다. 혈류의 소통에서 압력과 부종의 해소로 옮겨 갔습니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가리키는 것이 다릅니다.

라. 명제가 닿지 않는 자리

이 명제가 설명하지 못하는 통증이 있습니다.

신경 자체가 손상되어 생기는 통증입니다. 대상포진이 지나간 자리의 통증, 절단된 팔다리가 아픈 환상통이 여기 속합니다. 아픈 부위에 혈류를 개선해도 통증은 남습니다. 통증을 만드는 곳이 그 부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추에서 통증 처리가 증폭된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다룬 섬유근통이 그렇습니다. 통증이 넓게 퍼져 있고 조직 손상이 확인되지 않으며, 순환을 개선하는 접근으로 잘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不通則痛을 억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순환을 계속 개선하려는 치료가 반복되고, 반응이 없으면 아직 충분히 통하지 않았다고 해석하게 됩니다. 반증이 불가능한 구조로 들어갑니다.

명제의 경계를 그어 두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마. 고장이 나누는 경계

두 체계가 같은 것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정상 설명의 유사성이 아니라 실패 양상의 일치입니다.

협심증에서 혈류를 회복시키면 통증이 사라집니다. 이 실패와 회복의 짝이 통즉불통의 예측과 정확히 맞습니다. 여기서는 두 체계가 같은 대상을 봅니다.

섬유근통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순환을 개선해도 통증이 줄지 않고, 오히려 수면을 회복시키면 통증이 달라집니다. 예측이 어긋납니다. 여기서는 다른 대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서술은 이렇습니다. 不通則痛은 조직 수준의 침해수용성 통증, 특히 허혈과 압력에 의한 통증을 잘 설명합니다. 신경병증성 통증과 중추 감작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범위를 좁히면 명제는 오히려 쓸모가 생깁니다. 이 통증이 그 범위에 드는가 아닌가를 묻는 진단적 질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 남는 질문

그렇다면 고전의 通은 무엇을 가리켰는가. 혈류인가, 압력인가, 아니면 그보다 넓은 무엇인가.

같은 계열의 명제로 不榮則痛이 있습니다. 영양되지 못해도 아프다는 말입니다. 막혀서 아픈 것과 부족해서 아픈 것을 나눈 서술인데, 이 구분이 현대 통증생리의 어디에 놓이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 다루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 문장을 근거로 모든 통증에 순환 치료를 하면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허혈이나 압력에 의한 통증에서는 방향이 맞지만 신경병증성 통증이나 중추 감작이 주된 기전인 경우에는 예측이 어긋납니다. 통증의 성격을 먼저 나누는 일이 앞섭니다.

통증이 있는데 검사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통하지 않아서인가요

검사에서 조직 이상이 없다는 것은 통증을 만드는 층위가 조직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순환 개선보다 수면과 활동, 통증 처리 쪽을 함께 보는 편이 실제적입니다.

참고문헌

  1. 黃帝內經 素問 擧痛論篇 — 한기와 경맥의 통증 발생 서술
  2. Guyton and Hall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Somatic Sensations Pain — 허혈성 통증과 침해수용 기전
  3.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 Terminology — 신경병증성 통증과 통각과민 정의
*본 내용은 의료광고 심의 기준을 준수하며 개인의 체질과 상태에 따라 효과 차이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한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