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여러 과를 돌게 되는 병
이 병으로 진단받으신 분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고, 얼굴에 발진이 생겨 피부과에 갔고, 피곤해서 내과에서 피검사를 했고, 머리가 빠져 또 다른 곳을 찾았다고 하십니다. 각각의 진료에서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누군가 이 증상들을 한자리에 모아 봤을 때 비로소 그림이 보입니다.
이 병의 성격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 장기의 병이 아니라 면역이 몸의 여러 곳을 동시에 공격하는 병이라 증상이 흩어져 나타납니다. 그래서 흩어진 채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진단까지 몇 년이 걸리는 일이 드물지 않은 이유입니다.
나. 흩어진 증상들을 모으면
가장 흔한 것은 관절 증상입니다. 손가락과 손목, 무릎이 아프고 아침에 뻣뻣합니다. 다만 류마티스 관절염과 달리 관절이 파괴되어 변형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아픈데 엑스레이는 깨끗한 경우가 흔합니다.
피부 증상은 이 병의 이름이 된 부분입니다. 양쪽 뺨과 콧등에 걸쳐 나비 모양으로 붉은 발진이 나타나는 것이 대표적인데, 모든 환자에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없다고 해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가 햇빛입니다. 햇빛을 쬔 뒤에 발진이 생기거나 심해지고, 몸살처럼 앓아눕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들이나 여행을 다녀오면 며칠 앓는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데 우연이 아닐 수 있습니다.
피로도 특징적입니다. 자고 일어나도 회복되지 않고 일상을 이어가기 어려운 정도의 피로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원인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다른 증상과 함께 놓으면 의미가 생깁니다.
여기에 입안이 자주 헐고, 머리가 뭉텅이로 빠지고, 손발이 찬 곳에서 하얗게 또는 파랗게 변했다가 돌아오는 반응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원인 모를 미열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 왜 검사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가
이 병에서 자주 듣는 검사가 항핵항체입니다. 그런데 이 수치만으로 진단되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 가운데도 이 항체가 낮은 역가로 검출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비율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양성이라는 말만 듣고 병으로 단정하면 불필요한 불안을 안게 됩니다.
반대로 이 항체가 음성이면서 루푸스인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배제하는 데는 유용합니다. 이 비대칭을 알고 계시면 검사 결과를 훨씬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 진단은 여러 장기의 증상과 여러 검사 소견을 종합해 이루어집니다. 혈액에서 백혈구나 혈소판이 줄어드는지, 소변에서 단백이나 적혈구가 나오는지가 함께 확인됩니다.
특히 신장 침범 여부가 중요합니다. 증상 없이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 소변 검사가 정기적으로 필요합니다. 발이 붓거나 소변에 거품이 많아졌다면 알려야 할 변화입니다.
라.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합니다
이 병의 경과에는 파도가 있습니다. 활동기와 안정기가 번갈아 나타납니다.
이 성질이 두 가지 문제를 만듭니다.
하나는 안정기에 약을 임의로 줄이거나 끊게 된다는 점입니다. 괜찮아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병에서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활동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있고, 특히 스테로이드는 서서히 줄여야 합니다. 조절은 반드시 담당 진료를 통해 하셔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무엇이 활동기를 불러오는지를 놓친다는 점입니다. 자외선 노출, 감염, 심한 스트레스, 수면 부족, 일부 약물이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기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 병에서는 기록이 특히 유용합니다. 언제 나빠졌고 그 앞 며칠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적어 두면 본인의 방아쇠가 드러납니다. 이 기록은 다음 진료에서 약을 조절할 때도 근거가 됩니다.
마. 확인이 필요한 신호
다음은 지체하지 마십시오.
숨이 차거나 숨 쉴 때 가슴이 아픈 경우, 새로 생긴 심한 두통이나 경련, 의식이 흐려지는 변화, 발과 다리가 붓고 소변에 거품이 늘어난 경우, 고열이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면역을 억제하는 약을 쓰고 계신 경우 감염이 조용히 진행할 수 있습니다. 평소와 다른 발열은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열이 높지 않아도 오한이 들거나 기운이 급격히 떨어진다면 확인이 필요합니다.
바. 진료에서 함께 보는 것
진단과 약물 치료는 류마티스내과의 영역입니다. 한의 치료가 그것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시작합니다.
제가 진료에서 확인하는 것은 증상의 지도와 시기입니다. 어느 부위의 증상이 언제 시작되어 어떤 순서로 늘어났는지, 햇빛이나 스트레스와 시기가 겹치는지를 봅니다. 여러 과에 흩어진 기록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 자체가 도움이 됩니다.
그다음은 안정기의 삶의 질입니다. 검사 수치가 안정되어도 피로와 관절의 뻐근함, 수면의 질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이 실제 생활을 좌우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음이 부족해 허열이 뜨는 것과 습열이 정체된 것으로 나누어 보아 왔고, 활동기와 안정기에 접근을 달리해 왔습니다. 열감과 발진이 뚜렷한 시기와 피로와 냉감이 주가 되는 시기에 같은 방향을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복용 중인 약은 반드시 알려 주십시오. 스테로이드나 면역조절제, 항말라리아제를 쓰고 계시다면 그에 맞추어 처방 구성을 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항핵항체가 양성이라고 들었는데 루푸스인가요
이 항체는 건강한 사람에서도 낮은 역가로 검출될 수 있어 양성만으로 진단되지 않습니다. 증상과 다른 검사 소견을 함께 보아야 하며 판단은 류마티스내과에서 이루어집니다.
햇빛을 완전히 피해야 하나요
광과민이 있는 경우 자외선 차단이 관리의 한 축입니다. 다만 완전히 피하기보다 차단제와 옷, 시간대를 조절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실내 생활만 하면 비타민 디가 부족해질 수 있어 별도로 확인합니다.
여러 부위의 증상이 시기를 두고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면, 한자리에 모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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