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앞선 글이 남긴 질문
지난 글에서 고전이 정신 활동을 심에 두고 뇌를 저장고에 둔 이중 구조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 배치가 오래 유지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답의 일부가 여기 있습니다. 고전의 관심은 정신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보다 정신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있었습니다.
黃帝內經 素問 擧痛論에 이런 서술이 있습니다. 성내면 기가 올라가고, 기뻐하면 기가 느슨해지고, 슬퍼하면 기가 사그라들고, 두려우면 기가 내려가고, 놀라면 기가 어지러워지고, 생각이 많으면 기가 맺힌다.
감정마다 기의 움직임이 다르다는 서술입니다. 그리고 후대에 이것이 장부와 연결되어 노상간 희상심 사상비 우상폐 공상신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나. 큰 명제와 세부 배정을 나눕니다
이 조문에는 성격이 다른 두 층이 겹쳐 있습니다.
큰 명제는 감정이 몸의 상태를 실제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감정의 종류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세부 배정은 어떤 감정이 어떤 장부를 상하게 하는지를 하나씩 짝지은 것입니다.
이 둘은 검증의 성격이 다릅니다. 앞의 것은 오늘날 상세히 확인된 사실이고, 뒤의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분을 하지 않으면 조문 전체를 옹호하거나 전체를 폐기하는 양극단으로 가게 됩니다.
다. 큰 명제가 확인된 자리
정서적 자극이 몸을 바꾸는 경로는 두 갈래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빠른 경로입니다. 자극이 편도체를 거쳐 시상하부로 가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됩니다. 심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오르고 근육으로 혈류가 늘고 소화관의 움직임은 억제됩니다. 초 단위로 일어납니다.
다른 하나는 느린 경로입니다. 시상하부에서 뇌하수체를 거쳐 부신으로 이어지는 축이 작동해 코르티솔이 분비됩니다. 분 단위에서 시간 단위로 작용하며 대사와 면역, 수면에 영향을 줍니다.
성내면 기가 올라간다는 서술은 앞의 경로에서 관찰되는 것과 겹칩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박이 오르고 위로 몰리는 느낌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생각이 많으면 기가 맺힌다는 서술은 뒤의 경로에 가깝습니다. 지속적인 부하가 소화관의 운동을 늦추고 식욕과 배변을 바꾸는 양상은 앞서 장뇌축을 다루면서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라. 세부 배정은 다른 성격입니다
노여움이 간을 상하게 하고 근심이 폐를 상하게 한다는 배정은 오늘날의 장기 개념으로 검증되지 않습니다.
분노가 반복되면 간 효소 수치가 오른다는 식의 예측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근심이 폐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여기서 두 가지를 짚어야 합니다.
첫째, 앞서 肝主疏泄을 다루면서 확인한 대로 고전의 장부는 해부학적 장기가 아니라 기능계입니다. 노상간의 간은 간 조직이 아니라 소통과 정서 조절을 포함한 계를 가리킵니다. 그 층위에서 읽으면 분노와 그 계의 연결은 임상 관찰로서 의미가 남습니다.
둘째, 그렇다 하더라도 감정과 장부를 일대일로 배정한 구조 자체는 관찰보다 체계의 요구에서 나온 면이 큽니다. 오행의 다섯 자리에 감정을 배치하려면 짝이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배정은 임상에서 참고할 틀이지 검증된 인과 관계가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 두는 편이 조문을 더 오래 쓸모 있게 만듭니다.
마. 고장이 확인해 주는 자리
실패 양상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만성적인 정서적 부하가 이어질 때 나타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수면이 얕아지고, 소화가 안 되고, 목과 어깨가 굳고, 감염에 잘 걸리고, 월경이 흐트러지고, 통증에 예민해집니다.
이 조합은 오늘날 만성 스트레스 반응으로 설명되는 것과 정확히 겹칩니다. 코르티솔 분비 리듬의 변화, 자율신경의 균형 이동, 면역 조절의 변화, 통증 처리의 감작이 이 증상들을 만듭니다.
그리고 예측도 일치합니다. 정서적 부하를 다루면 이 증상들이 함께 달라진다는 예측이 양쪽에서 성립합니다. 하나씩 따로 치료하기보다 공통 축을 다루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점에서도요.
반면 예측이 어긋나는 자리가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해서 모든 신체 증상이 그것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갑상선 질환이나 빈혈, 종양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감정 탓으로 돌리면 확인해야 할 것을 놓칩니다.
이 경계는 실제 진료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이 검사를 생략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 임상에서 남는 것
그렇다면 이 조문에서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가.
저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증상을 물을 때 감정과 생활의 시기를 함께 묻는다는 태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를 물으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따라 나옵니다. 이 연결이 진단에 실제로 기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감정의 종류에 따라 몸에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다는 관찰입니다. 화가 쌓인 분과 불안이 지속되는 분, 오래 슬픔에 잠긴 분의 몸 상태는 실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같은 스트레스라는 말로 뭉뚱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구분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사. 남는 질문
기가 올라간다, 내려간다, 맺힌다는 서술은 방향을 가진 표현입니다.
위로 몰려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아래는 차가운 상태를 고전은 上熱下寒으로 서술했습니다. 이 방향성이 오늘의 체온 조절과 혈관 반응에서 어디에 놓이는지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검사를 안 받아도 되나요
반대입니다. 스트레스가 관여하는 증상이라도 다른 원인을 배제한 뒤에 그 판단이 성립합니다. 체중 변화나 발열, 야간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화를 참으면 병이 되나요
참는 것과 표현하는 것 중 무엇이 낫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정서적 부하가 오래 이어지면 수면과 소화, 통증 감각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확인되어 있습니다.
참고문헌
- 黃帝內經 素問 擧痛論篇 — 怒則氣上 등 칠정과 기의 운동에 관한 원문
- 東醫寶鑑 內景篇 神 — 칠정과 장부에 관한 조문의 인용
- Guyton and Hall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Adrenocortical Hormones and Stress Response — 스트레스 반응과 코르티솔 분비 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