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앞 글에서 남긴 것
앞 글에서 칠정이 몸을 바꾼다는 서술을 다루면서, 고전이 감정의 작용을 방향으로 적어 두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기가 올라간다, 내려간다, 맺힌다는 표현들입니다.
방향을 가진 서술은 검증하기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성이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굳어진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위는 뜨겁고 아래는 차다는 배치입니다.
나. 출처를 정확히 해 둡니다
상열하한이라는 네 글자는 하나의 조문으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배치가 임상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상한론』 궐음병편입니다. 손발은 싸늘한데 목구멍은 헐고 아프며 설사가 그치지 않는 상태를 다룬 조문들이 있고, 후대의 주석 전통이 이 국면을 상열하한으로 정리했습니다. 『동의보감』은 잡병편의 화문과 한문에서 이 배치를 다루며, 위의 열을 끌어내리고 아래를 덥히는 치법을 함께 서술합니다.
원전을 한 곳으로 지목할 수 없다는 점은 이 개념을 다룰 때 먼저 밝혀 두어야 할 사항입니다.
다. 이 서술의 실제 주장
상열하한에서 눈여겨볼 것은 열이 있다는 진술이 아닙니다. 열이 몸 안에서 고르게 있지 않다는 진술입니다.
열이 많다거나 적다는 말은 총량에 관한 것입니다. 상열하한은 총량이 아니라 분포에 관한 말입니다. 같은 몸에서 어떤 부위는 남고 어떤 부위는 모자라며, 남는 쪽과 모자라는 쪽이 같은 시간에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구분은 치료의 방향을 바꿉니다. 총량 문제라면 더하거나 빼면 됩니다. 분포 문제라면 옮겨야 합니다. 고전이 열을 내리는 약과 아래를 덥히는 약을 한 처방 안에 함께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라. 현대 생리학의 서술
오늘의 체온 조절은 심부와 표면을 나누어 설명합니다.
몸통과 머리 안쪽의 심부 온도는 좁은 범위에서 지켜집니다. 반면 피부와 팔다리 끝의 온도는 크게 흔들립니다. 이 흔들림 자체가 조절 장치입니다.
시상하부의 시각교차앞구역이 기준 온도를 잡고, 교감신경이 피부 혈관의 수축 정도를 조절합니다. 열을 지켜야 하면 손발의 혈관을 조입니다. 특히 손끝과 발끝, 코와 귀에는 동정맥문합이라는 지름길 혈관이 있어 이곳이 닫히면 표면 온도가 빠르게 떨어집니다. 열을 버려야 하면 반대로 피부 혈관을 엽니다.
즉 현대 생리학도 몸의 열을 하나의 값으로 보지 않습니다. 중심은 지키고 표면은 여닫는 구조로 봅니다. 위아래라는 좌표는 다르지만, 열이 부위마다 다르게 배치되며 그 배치가 조절의 결과라는 서술은 겹칩니다.
마. 대응이 성립하지 않는 부분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상열하한을 체온 분포와 같다고 말하면 지나칩니다.
첫째, 심부 온도는 실제로 위아래가 갈리지 않습니다. 갈라지는 것은 피부 온도와 그 아래의 혈류이며, 상열하한이 서술하는 것은 감각과 표면의 문제입니다.
둘째, 위는 심의 화이고 아래는 신의 수라는 배치는 관찰만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행 체계 안에서 화는 위에, 수는 아래에 놓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체계가 요구하는 자리가 먼저 있고 관찰이 그 자리에 담긴 측면이 있습니다. 이 부분까지 생리학으로 옮기려 하면 무리가 생깁니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궐음병의 상열하한과 오늘 진료실에서 만나는 상열하한은 같은 대상이 아닙니다. 전자는 급성 열병이 깊이 들어간 위중한 국면입니다. 후자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발이 시린 만성적인 상태입니다. 같은 용어가 전혀 다른 임상 상황에 쓰여 왔고, 이것이 이 개념을 흐리게 만든 주된 이유입니다.
바. 고장이 증언하는 것
대응의 근거는 정상 상태의 설명이 닮았다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무너질 때 같은 모양으로 무너지는가에서 나옵니다.
레이노 현상을 보십시오. 찬 곳에 나가면 손끝이 하얗게 변하고 감각이 둔해집니다. 심부 온도는 정상이고 체온계의 숫자도 정상입니다. 총량은 멀쩡한데 말단으로 가는 배분만 실패합니다.
갱년기의 열감은 더 분명합니다. 얼굴과 목, 가슴이 갑자기 달아오르는 동안 발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위와 아래가 같은 시간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오늘의 설명은 이를 열 중립 구간이 좁아진 상태로 봅니다. 조금만 벗어나도 방열과 보온이 과하게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약으로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혈관과 자율신경에 작용하는 일부 약을 복용한 뒤 손발이 유난히 시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초 혈관의 조절에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몸 전체의 열은 정상인데 배치만 어긋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상열하한이라는 오래된 서술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을 보고 있었다는 근거입니다.
사. 남는 질문
배치가 어긋나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
고전은 흐름이 고인 자리에 담음이 생긴다고 적었습니다. 열이 고르지 않은 몸에서 수분의 처리도 함께 어긋난다는 서술입니다. 담음이라는 개념이 오늘의 어떤 현상과 마주 놓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서 마주 놓일 수 없는지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참고문헌
- 傷寒論 辨厥陰病脈證幷治 — 手足厥冷과 咽喉不利·下利가 함께 나타나는 조문 및 후대 주석의 上熱下寒 정리
- 東醫寶鑑 雜病篇 火門·寒門 — 위아래로 갈린 한열의 병리와 치법 서술
- Guyton and Hall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Body Temperature Regulation — 심부·표면 온도, 시각교차앞구역의 기준 온도, 피부 혈관의 교감신경 조절